진실의 진실에 의한 진실을 위한 뉴스 : 최승호 뉴스타파 PD

[인물과사상]

인물과사상 링크 가기

월간 인물과사상 5월호

진실의 진실에 의한 진실을 위한 뉴스

5월호_표지(블로그)

1961년 12월 26일 강원도 인제에서 태어났다. 초등학생 때부터 대구에서 성장해 경북대학교 법대 행정학과에 입학했다. 1986년 MBC에 입사했다. 시사교양국 PD로 <경찰청 사람들>, <MBC스페셜> 등 여러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1995년 <PD수첩>에 합류했다. 다양한 사회적 보도를 이어갔다. 2003년에는 MBC 노동조합 위원장을 맡았다. 황우석 교수 팀의 줄기세포에 관한 제보를 받아서 끈질긴 취재 끝에 2005년 11월 <황우석 신화의 난자 의혹>과 2006년 1월 <줄기세포 신화의 진실>을 방송했다. 2009년 <PD수첩>에 복귀해서 <검사와 스폰서>를 보도했다. 2010년 8월 <4대강, 수심 6m의 비밀>을 보도해서 4대강 사업이 사실상 대운하 사업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 방송은 국토해양부의 방송 금지 가처분 신청과 당시 김재철 MBC 사장의 방송 보류 결정 등 우여곡절 끝에 겨우 방송될 수 있었다. 하지만 최승호 PD는 이 방송을 끝으로 <PD수첩>을 떠나야 했다. 2012년 7월 파업 참여를 이유로 MBC에서 해고되었다. 2013년 『뉴스타파』에 합류했다. 『뉴스타파』에서 <4대강, 수심 6m의 비밀> 속편을 만들었다. 현재 『뉴스타파』의 앵커도 맡고 있다. 『뉴스타파』는 최근 국제 공조를 통해 조세피난처의 한국인에 관한 특종을 보도했다. 국정원의 간첩 조작 사건을 탐사보도한 영화 <자백>를 제작했다. <자백>은 2016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될 예정이다.

최승호라는 이름은 PD저널리즘의 대명사가 된 지 오래다. 1990년대를 거치며 성숙하고 2000년대에 이르러 만개했던 PD저널리즘은 방송 탐사보도 저널리즘의 한국적 명칭이었다. PD저널리즘은 출입처에 얽매인 보도국 기자 취재 시스템을 우회하는 창의적인 문제의식과 취재 방식을 선보이며 한국 저널리즘을 한 단계 도약시켰다. 그 최전선에 MBC <PD수첩>에 있었고 그 중심에 PD이자 앵커 최승호가 있었다. <PD수첩>에서 최승호 PD는 시대의 문제작들을 만들었다. 황우석 교수 보도가 대표적이다. 흐릿했던 제보에서 단서를 찾고 상식적인 질문을 던지며 진실에 접근했다. 진실을 마주하고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대중의 비이성적 역풍도 경험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최승호 PD는 신뢰받는 언론인으로 각인되었다. 하지만 탐사보도 저널리즘은 PD 혼자서 완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MBC라는 조직이 흔들리면서 최승호 PD 역시 설 자리를 잃었고 끝내 조직 밖으로 내몰렸다. 그렇게 최승호 PD는 방송 탐사보도 저널리즘의 진보와 퇴행을 모두 경험하는 행운과 불행을 누렸다. 지금 최승호 PD는 다시 한 번 언론의 최전선에 서 있다. 비영리 독립 언론 『뉴스타파』에서 활약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언론의 권력 감시 기능이 약화되면서 비영리 독립 언론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뉴스타파』는 그 최전선에 서 있다. 최승호라는 이름과 꽤 잘 어울리는 곳이다. 한 달 남짓 된 새로운 『뉴스타파』스튜디오에서 최승호 PD를 만났다.
‘탐사보도 저널리즘’의 상징이 되다

최근 『뉴스타파』의 조세피난처 명단 보도가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그 명단에 아이슬란드 총리가 포함되자 그는 즉각 사임했다. 한국에서도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노재현의 페이퍼컴퍼니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런 탐사보도는 한 언론사의 힘만으로 힘들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생기면서 국제적인 탐사보도 언론인들의 공동 작업이 가능해진 것이다. 『뉴스타파』는 ICIJ의 한국 파트너다. 『뉴스타파』는 시민 3만 5,000명의 후원으로 유지되니 독립성이 보장된다. 재벌의 돈이나 광고를 받는 게 아니기 때문에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다. 그 탐사보도 저널리즘의 중심에 최승호 PD가 있다. 그는 MBC에 있으면서 <황우석 신화의 난자 의혹>, <줄기세포 신화의 진실>, <검사와 스폰서>, <4대강, 수심 6m의 비밀> 등 탐사보도를 통해 진실을 찾아나섰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해고였다.

최승호 PD는 “탐사보도에서 중요한 건 창의성과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황우석 교수 보도도 여러 가지 장애를 극복하고 줄기세포가 가짜라는 걸 밝혀내기까지 창의적 취재가 필요했고, 그것을 밝혀내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시작도 못했다고 말한다. 왜 이게 중요하고 자신이 왜 꼭 해야 하는지에 대한 자기 확신과 의지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또한 황우석 교수 보도가 있던 2007년은 한국 탐사보도 저널리즘의 황금기였다. 그만큼 대중은 언론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진실을 알고 싶어했다. 하지만 지금 공영방송과 언론은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 MBC, KBS 등은 몰락했고, 대중도 언론을 믿지 않는다. 진실을 보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승호 PD가 대안 언론과 독립 방송을 모토로 시작된 『뉴스타파』를 선택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지금까지 『뉴스타파』는 조세피난처 명단 공개, 4대강의 비밀, 국정원 간첩조작 사건,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등 권력의 입김에 그 누구도 공개하지 않았던 이슈를 세상에 드러내면서 언론이 지향하는 바를 역설했다. 『뉴스타파』는 한국 언론에 경종을 울리며 수많은 비판 기사와 성역과 금기를 넘어 참된 언론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권력의 부끄러운 민낯을 만천하에 공개하면서 언론 본연의 역할을 다했다. 진실이 파묻히고 외곡되는 한국 사회에서 『뉴스타파』와 최승호 PD의 역할은 그래서 중요하다.

 

인터뷰 맛보기

신기주 : ‘취재하지 말걸’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나요? 지금까지 기념비적인 탐사보도 작품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 과저에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요. 내가 찾아낸 진실이 과연 진실인지 물으면서 밤잠을 설쳤던 때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최승호 : 그럴 때도 있었죠. 황우석 교수 보도가 그랬어요. 황우석 교수가 만들었던 줄기세포 11개가 전부 가짜라는 것을 검증을 통해 알아냈어요. 그럼에도, 하나라도 진짜면 어떻게 하느냐는 고민이 있었죠.

신기주 : 하나라도 진짜라면 취재 근거가 와르르 무너지겠죠. 작은 실수 하나가 취재의 신뢰성을 완전히 무너뜨릴 수도 있어요. 게다가 PD나 기자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잖아요. 전문가의 자문을 얻어야 하는데, 결국 진실을 물어물어 찾아가야 하는 꼴이죠.

최승호 : 결국 데이터를 보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어요.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는 하나도 진짜 없다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만, 만일 하나라도 진짜가 있었다면 굉장한 역풍을 맞았을 거예요. “하나만 있어도 원천 기술은 있는 거 아니냐”, “1개를 만들었으면 11개를 만들 수도 있을 거 아이냐”, “기다리면 되었을 거 아니냐”, “왜 들쑤셔서 대하민국의 위대한 과학자를 망가뜨리느냐”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 있었어요. 그런 상황이 되면 그건 곧 저뿐만 아니라 <PD수첩>과 MBC가 몰락할 수 있었죠. 거기에 PD 저널리즘에 대한 불신까지요.

신기주 : 탐사보도, PD 저널리즘이라는 게 자극적인 소재를 다루기 마련이잖아요. SBS<그것이 알고싶다>는 여전히 거기에 머물러 있다고 느껴질 때도 있지만, <PD수첩>은 거기서 진화했어요. 정치·사회적으로 예민한 이슈들을 취재하기 시작하는데 어떻게 그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는지 궁금했어요. 사실 그렇게 진화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PD수첩>은 어떻게 정치권력이든, 경제권력이든 권력을 겨냥하면서 진화를 이룰 수 있었던 걸까요?

최승호 : <그것이 알고싶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PD수첩>, <추적60분>도 마찬가지인데, 탐사보도를 하는 저널리스트라면 누구나 큰 권력을 취재하고 싶어 해요. 그게 본능이에요. 문제를 그걸 막는 힘이 너무 강하다는 거죠. MBC는 노조를 중심으로 뭉쳐서 그걸 돌파했어요. 그 과정에서 파업도 벌이면서 경영진과 단체협약을 맺었죠. 그러면서 서서히 경여진이 방송 내용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문화가 정착되었어요. 물론 ‘센’방송을 하고 나면 크고 작은 보복을 당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PD수첩> 전체가 쫓겨나기도 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밀어붙이다 보니까 방송사 안팍에서 <PD수첩>은 거악(巨惡)을 다루는 프로그램이라는 공감대가 있었던 거죠. 때로는 방송사 구성원들을 곤란하게도 했지만 필요한 프로그램이라는 내부적 합의 같은 게 생겼어요.

신기주 : 예전에 소니가 왜 망가졌는지 알고 싶어서 책을 찾다가 소니 출신의 경영 컨설턴트가 쓴 책을 읽게 되었어요. 소니가 망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죠. 시대적 상황도 있고, 기술 리더십을 애플에 뺏기기도 했고요. 그런데 그 컨설턴트가 이야기한 핵심은 중간에 들어온 인력들이었어요. 최고를 지향하기보다 소니니까, 소니에서 일하면 좋으니까 들어온 ‘소니 정신’이 없는 사람들이었다는 거죠. 그 사람들이 한 계층을 차지하고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뽑더라는 거죠.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뽑으면 추월당하고 밀리니까요. 한 번 퇴행과 추락이 시작하니 막을 수 없더라는 거예요.

최승호 : 그게 바로 지금의 MBC죠. 지금 MBC나 KBS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한국 공영방송 시스템이 얼마나 부패하고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느지 보여주고 있어요. SBS나 최소한 종편인 TV조선이라면 이렇게 까진 안 갔을 거예요. 기업이니까 이렇게 망가지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렇게까지는 안 하는 거죠. SBS는 적당히 <그것이 알고싶다>의 상품 가치를 유지하고 있잖아요.

신기주 : 더 망가트리면 기업으로서 손실이니까요.

최승호 : 물론 더 성장해서 거대 권력을 겨냥하도록 두지도 않지만 그래도 브랜드 가치를 유지할 정도로는 지켜준다는 말이에요. 하지만 공영방송은 그런 게 없어요. 자기네들 임기까지만 뜯어먹고 살면 되니까요. 이렇게 가면 도덕적 해이만 문제가 아니라 공영방송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문제가 될 거예요. 공영방송이 도대체 왜 필요하냐는 말이 나올 수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