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청산’ 어제가 아닌 오늘의 문제

[PD저널] 2015년 8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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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뉴스타파- 친일과 망각’ 취재한 송원근 PD·심인보 기자

광복 70주년을 맞았지만 우리는 진정한 광복을 이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여전히 식민시대를 관통하던 잔재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있다. 그런 와중에 현재를 살고 있는 친일 후손의 삶과 인식을 전면으로 드러낸 영상 콘텐츠가 주목받고 있다.  바로 탐사보도전문매체 <뉴스타파>가 광복70주년 기획특집으로 배포한 ‘친일과 망각’(4부작)이다. 올 여름 1000만 관객을 몰고 온 영화 ‘암살’이 독립운동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있다면 온라인에선 ‘친일과 망각’은 다시금 우리 역사의 과오를 직시하고 친일청산의 필요성을 각인시키고 있다는 평이다.

지난 18일 오후 서울시 마포구 서강로에 위치한 한국 탐사저널리즘센터에서 ‘친일과 망각’의 제작에 참여한 <뉴스타파> 송원근 PD(이하 송PD)와 심인보 기자(이하 심 기자)를 만났다. 한국언론사의 대표적인 인물 청암 송건호 선생의 얼굴이 벽면에 드리워진 <뉴스타파> 사무실에서 인터뷰는 진행됐다.

▲ 뉴스타파 사무실에서 송원근PD와 심인보기자가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PD저널

‘친일과 망각’은 친일파 후손의 삶과 인식을 드러내면서 케케묵은 줄 알았던 친일청산의 문제를 다시금 현재진행형으로 가져온다. ‘친일과 망각’ 2부와 3부는 지금껏 친일파 후손들이 호의호식을 하며 살고 있을 것이란 심증을 확신으로 바꾸도록 하는 의미 있는 통계와 수치들을 제시했다. <뉴스타파>가 확인한 친일 후손 거주지 475곳 가운데 전체 84%가 수도권에 주택을 자산으로 소유하고 있었고, 서울 거주 친일후손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강남 3구에 주택을 갖고 있었다. 또 친일파 후손들의 상당수가 선대로부터의 상속이나 증여를 통해 상가 등을 소유한 임대사업자였다.

이번 방송을 기획하게 된 이유에 대해 송 PD는 “친일파들은 죽고 없지만 그 이후를 되짚어 볼 필요성을 느꼈다”며 “친일파 후손들이 우리 사회 어느 지점에서 어떤 식으로 존재하는지를 정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심 기자는 이번 친일파 후손들의 학력과 직업은 물론 거주형태 등을 실증적으로 분석했다는 점에서 이번 기획의 의미를 짚었다.

“친일파 명단을 작성하는 데만 60년이 걸렸다. 만약에 당대에 명단 작성이 이뤄졌다면 당사자들에 대한 수사와 처벌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기를 놓쳤다. 게다가 그 명단이 매우 어렵게 우리 사회가 만들어 낸 1차 성과물임에도 정치적 외압이나 뉴라이트의 공세로 2차적인 연구나 논의가 일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단순히 과거청산이 아니라 과거 극복을 위한 단초를 찾아보고자 (후손들에 대한) 취재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드러난 친일파 후손의 재산은 빙산의 일각이다. 재산조사위원회에서 추정한 친일재산 토지가 4억 3천만㎡이었는데 실제로 국가에 귀속돼 독립운동가 후손을 위해 매각된 것은 0.3%에 불과하다. 제작진은 친일재산 토지를 추적하고 그 후손들의 현 주거지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 국가로 귀속되지 못한 토지들은 현금이나 다른 부동산의 형태로 바뀌어 후손들의 경제적 기반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 ‘뉴스타파’ 누리집 이미지 ⓒ뉴스타파

선대의 친일행적에 대한 후손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과거사실을 부정하면서 화를 내는 후손부터 모른다고 대답을 회피하는 후손까지. 취재진들은 이러한 후손들을 보면서 어떤 감정이 들었을까.

“내가 훌륭하다고 믿었던 할아버지를 향해 누군가가 친일파라고 지목하면 어떤 생각이 들까라는 생각을 해보면 (반발하는) 후손들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 문제는 <뉴스타파>가 메일을 보내기 전까지 친일 사실을 아예 몰랐거나 알고도 외면했던 사람들이 지금까지 계속 외면하면서 살아올 수 있었던 사회 분위기다. 사회적으로 친일 청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 큰 헤게모니를 갖지 못한 거다. 이 헤게모니는 개인의 태도로 결정되는 게 아니다.” (심인보)

오히려 증조부의 친일 행적보다 아버지의 인민군 복무 사실에 고통을 받았던 후손도 있었다. 이번 ‘친일과 망각’의 4부 ‘나는 고백한다’ 편에서 증조부의 친일행적을 공개 사과한 문효치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은 오히려 친일 매국노의 후손보다 친북 빨갱이의 자식으로 몰리는 것에 더 큰 사회적 압박을 받아 왔다고 토로했다. 반공 이데올로기가 압도적인 시대였다. 친일 후손의 입장에선 선대의 친일 행적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아도 살 수 있는 환경이었다.

<뉴스타파>의 요청에 응해 선대의 친일 행적을 공개적으로 사과한 후손은 3명뿐이었다. 물론 사과를 한다고 해서 조상의 친일행적이 면죄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사과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송PD는 “나의 뿌리를 부정하는 것일 수도 있고 효에 있어서도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일이기에 (후손들의) 사과에는 정말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라며 “국민들에게 용서를 구했다는 것 자체에 큰 의미가 있다”고 답했다.

지금까지 현대사를 조명한 프로그램이 많았지만 ‘친일과 망각’처럼 친일파 명단을 바탕으로 친일후손들을 추적한 형태의 프로그램은 찾기 어렵다. <뉴스타파>의 이번 기획물은 친일 후손을 매개로 그들의 인식을 드러냄과 동시에 그들과의 화해 가능성을 모색했다. 이번 기획이 더욱 주목 받는 이유다.

해방 이후 청산되지 못한 역사는 현재 우리 삶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무엇보다 ‘정의로운 사람보다 힘이 센 사람에게 붙어야 자자손손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전도된 가치의 확산이 우리 사회의 정의를 바로세우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특히 송 PD는 친일 후손들이 여론 형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주요 언론사를 장악한 현실을 개탄했다.

▲ <뉴스타파>는 ‘친일과 망각’ 역사 콘텐츠 뿐만 아니라 더 깊이있는 정보들을 제공하는 ‘특별기사’도 자사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취재 과정에서 얻은 풍부한 정보와 증언, 동영상 및 그래픽 자료들이 시청자의 이해를 돕는다.

언론계의 대표적인 친일 후손은 이인호 KBS이사장이다. 그의 할아버지 이명세는 일제 강점기 시절 일제의 침략전쟁과 징병제 실시를 찬양하고 일제의 고위 관료를 칭송했다. ‘친일과 망각’은 주요 언론사들의 사주일가가 친일파의 후손임을 보도했다. 송PD는 “막강한 파워를 가진 언론사를 친일 후손들이 이어받았다”며 “(과거 청산을 위한) 제대로 된 여론이 형성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상파 방송들이 기획한 광복70주년 프로그램들에 대해서도 송 PD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상기된 목소리로 이번 KBS <나는 대한민국>을 비판했다. 그는 “다 덮고 미래만 보자는 거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어 “세월호 1주기 때도 똑같은 걸 느꼈다”며 “그때도 수색이 종료되고 인양이 결정되기까지의 과정에서 정부가 어떤 역할을 했느냐에 대한 본질적 비판이 없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광복 70주년이라고 하는데 정말 광복이 된 것인지 아닌지, 역사의 과오를 다 정리했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를 메이저 방송들이 전혀 언급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나아가 심 기자는 최근 KBS와 MBC 이사회가 왜곡된 역사관을 가진 극우인사들로 채워진 것과 관련해 더 큰 우려를 표출했다. 뉴라이트 인사들의 역사전쟁이 시작된 이래로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정교한 논리와 내용들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가오는 총선과 대선을 이기기 위해 이사회를 이렇게 채우는 것이라는 차원을 넘어 더 큰 그림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보면 볼수록 그렇다. 이러한 뉴라이트의 움직임을 제대로 대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화 <암살>의 천만 관객을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국민들 사이의 친일파들에 대한 도덕적인 분노가 10~20년 뒤에는 그 정당성의 근거를 잃어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든다.”

심 기자의 말처럼 영화 <암살>의 흥행 배경에는 대중들의 분노가 자리 잡고 있는지 모른다. 그 분노는 친일파와 독립운동가라는 역사적 두 주체의 뒤바뀐 운명에 대한 절망과 탄식에서 기인한다. 광복절이 아니라 건국절을 기념해야 한다는 보수 인사들의 주장이 쉴 새 없이 매몰아 치는 요즘 <친일과 망각>은 잊히고 있는 친일 청산 문제에 대한 화두를 또 한번 던진다.

구소라 기자 soragoo@pdjourn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