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 3년…“기성 언론보다 떳떳했던, 진실의 수호자”

[미디어스] 2015년 1월 27일

미디어스 링크 가기

국정원 대선개입·간첩조작 연속보도, 원전묵시록 등 굵직한 보도 선보여

“안녕하십니까 뉴스타파 앵커 노종면입니다. 3년 5개월 만에 스튜디오 아닌 스튜디오에 앉아 카메라를 바라봅니다. 기성언론에 비해 뉴스타파는 인력도 장비도 보잘 것 없습니다. 그러나 권력자의 비리를 파헤치지 못하고 부실수사를 하고도 신의 영역 운운하는 검찰을 방치하고 또 국제 사기를 오히려 홍보하는 언론 현실을 직시하는 한, 기성언론보다 떳떳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롱받는 뉴스는 더 이상 만들 수 없다며 MBC 기자들이 제작거부에 나섰습니다. 뜻을 함께 하는 수많은 언론인들과 함께 죽어가는 저널리즘의 복원을 선언하고자 합니다”
– <뉴스타파> 1회 노종면 앵커의 오프닝 멘트

2012년 1월 27일, <뉴스타파>의 첫 방송이 나갔다. 눈치 보면서 권력 비판 보도를 하지 못하는 기성언론의 ‘가짜뉴스’를 ‘타파’한다는 의미로 지은 제호처럼 <뉴스타파>는 주요 언론은 보도하지 않지만 ‘주목’해야 할 이슈를 집요히 쫒고, 발굴해 냈다. <미디어스>는 어느덧 3주년을 맞게 된 <뉴스타파>의 지난 시간을 정리해 보았다.

2012년 : <뉴스타파>의 시작

KBS 김인규, MBC 김재철, YTN 배석규 등 정권이 내려 보낸 낙하산 사장들로 인해 언론사 연대파업이 일어났던 2012년, <뉴스타파>가 탄생했다. 2010년 MBC 공정방송 파업 당시 해직된 이근행 PD가 대표를 맡아, 전국언론노동조합의 지원 아래 매주 한 차례 방송을 해 나갔다.

▲ 2012년 1월 27일 <뉴스타파> 첫 방송

<뉴스타파>는 1월 27일 첫 방송에서 1026 선관위 사이트 마비 사건, MB정부가 14조를 들여 무리하게 무기 도입을 하는 이유, MB정권의 방송장악 등을 다뤘다. KBS에는 한 줄도 나오지 않은 대법원의 정연주 사장 ‘무죄 판결’ 보도에서는 정연주 사장이 직접 출연해 이야기를 나눴다.

<뉴스타파>의 위력은 대단했다. 첫 방송 유튜브 영상 조회수가 90만을 돌파했다. ‘4대강 살리기 사업’, ‘민간인 불법사찰’, ‘언론사 연대파업’ 등 민감한 이슈를 피하지 않고 보도한 <뉴스타파>는 인터넷 매체 최초로 한국PD연합회가 수여하는 제146회 <이달의 PD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언론인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우왕좌왕할 때 <뉴스타파>가 새 길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는 것이 수상의 이유였다.

총 21회 분의 방송을 마치고 <뉴스타파>는 재정비에 들어갔고, 같은 해 8월 17일부터 시즌2를 시작했다. 용산참사를 주제로 한 다큐 <두 개의 문> 김일란 감독이 시즌2 앵커로 나섰다. 대선 기간의 활약도 빛났다. <뉴스타파>는 10월 박근혜 후보 캠프 인사가 안철수 후보 논문 표절 제보를 했다는 사실을 단독보도해 관심을 모았다.

연말에도 <뉴스타파>의 수상은 계속됐다. 10월에는 제24회 안종필 자유언론상을 수상했다. 문영희 심사위원장은 당시 “(뉴스타파의 성공은) 조중동 없어도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12월에는 “부족한 인력, 빈약한 장비, 자금난에도 불구하고 주류언론에서 외면하고 회피한 4대강 사업 부실 의혹, 선관위 투표소 변경, 민간인 불법 사찰 등을 보도해 권력과 자본에 대항해 진실을 파헤치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보호했다”며 제11회 송건호 언론상을 받았다.

▲ 2012년 <뉴스타파> 주요 일정, 보도 목록 (표=미디어스)

2013년 : ‘조세피난처’·‘국정원 대선개입’ 연속보도

<뉴스타파>는 해직언론인들이 주축이 되어 한시적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임의단체’를 벗어나 2013년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KCIJ)’라는 비영리 민간단체(NPO)로 조직을 정비하고 시즌3 방송을 시작했다. 마포구 신수동에 따로 사무실을 마련해 보다 안정적인 방송환경을 만들었고, 공개채용을 통해 취재 인원을 점차 늘려갔다.

▲ 2013년 <뉴스타파> 주요 일정, 보도 목록 (표=미디어스)

2013년은 KBS, MBC, YTN 등 이른바 ‘메이저 출신’ 기성언론인들의 합류가 가장 활발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KBS 탐사보도팀장이었던 김용진 기자를 대표를 맡았고, MBC <PD수첩>에서 ‘4대강 수심 6M의 비밀’, ‘검사와 스폰서’ 등 사회고발성 보도를 선보인 최승호 해직PD가 들어와 시즌3의 앵커를 맡았다. 시즌2부터 합류했던 최경영 기자도 KBS를 떠나 본격적으로 <뉴스타파>에 합류했고, 권석재, 정유신 YTN 해직기자, 김경래 전 KBS 기자, 김진혁 전 EBS PD(객원)도 함께 했다.

비영리 독립언론으로 대중적 인지도가 비교적 낮았던 <뉴스타파>는 모든 언론이 ‘받아썼던’ 조세피난처 보도로 큰 주목을 받았다. <뉴스타파>는 ICIJ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와 공동 취재한 결과물을 5월 22일 발표했고, 이후 8차례에 거쳐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은닉한 국내 인사들의 명단을 발표했다.

3월부터는 2012년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을 추적해 국정원이 사용한 트위터 계정 묶음을 알아냈고, 5월에는 국정원 심리정보국 소속 이모씨가 대선 여론조작을 주도했다는 사실을 단독보도했다. <뉴스타파>는 5만 촛불대회, ‘국정원 언급’ 눈치 보는 지상파 방송사 보도 비평, <뉴스타파>를 상대로 한 국정원의 소송전 등 후속보도에도 충실했다. 2013년 10월, <뉴스타파>는 글로벌탐사저널리즘 리우 총회에 참가해 국내언론으로는 처음으로 ‘국정원 대선개입 보도 사례’를 발표했다.

▲ 2013년 5월 17일 <트위터 핵심계정은 국정원 심리정보국 직원 확인> 보도

2014년 : ‘국정원 간첩조작’·‘원전묵시록’ 보도

한국 언론 중 최초로 글로벌 탐사저널리즘 네트워크에 가입하며 ‘탐사저널리즘 매체’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한 <뉴스타파>는 2014년에도 화교 출신이자 전 서울시 공무원이었던 유우성 씨를 상대로 국정원이 ‘간첩 조작’ 시도를 했던 점을 파고들어 집중보도했다.

<뉴스타파>는 국정원이 중국 협조자에게 위조문서 초안을 작성해주면서까지 ‘간첩조작’을 위해 증거를 조작을 주도한 사실, 국정원이 제출한 위조문서와 가짜 영사확인서 등을 검찰이 묵인해 준 정황 등을 보도했다. 간첩조작 혐의로 국정원 직원들이 기소됐을 때에는 사법질서를 흔든 ‘초유의 증거조작 사태’에 따른 형량이 지나치게 낮은 점을 지적했고, 검찰이 유우성 씨의 변호를 맡았던 민변 변호사들에게 보복성 징계를 하려는 점을 비판하는 등 꾸준히 간첩조작 후속보도를 이어갔다.

▲ 2014년 9월 18일 <‘핵피아’, 그들만의 잔칫상…20조 원전 산업> 보도

2014년 9월부터는 원전 감시 프로젝트 <원전묵시록 2014> 보도를 시작했다. <뉴스타파>는 2014년 8월 2일, 영광 핵발전소 6호기에서 방사성 기체 폐기물이 배출됐다는 것을 알아냈다. 배출 원인을 확인조차 하지 않고 폐기물을 외부에 무방비로 배출한 사고가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보도 이후, 한국수력원자력의 거짓말도 드러났다. 한수원은 영광 핵발전소 6호기 폐기물 배출 사고 관련 국회 보고 자료를 거짓으로 꾸몄다. 기체 폐기물과 관련해 내부 보고서에 ‘분석 오류’가 있었다고 적시해 두고는 <뉴스타파>의 취재에는 “담당자의 개인 판단”이라며 말을 바꿨다.

이밖에도 국가 최고 보안시설인 핵발전소 정규직들의 업무용 컴퓨터가 공유돼 용역업체 직원들도 1급 보안 정보인 핵발전소 ‘설계도면’까지 접근 가능한 것, 핵발전소 직원들이 업무용 컴퓨터 ID 및 비밀번호를 공유해 방사성 폐기물 배출 허가 승인 등 중요 업무 처리까지 용역에게 맡긴 것 등 다양한 사실을 취재했다. <원전묵시록 2014>는 “핵발전소의 안전 관리와 ‘핵 마피아’의 이권과 실태를 추적해 안전 문제를 화두로 제시했다”며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수여하는 민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 2014년 <뉴스타파> 주요 일정, 보도 목록 (표=미디어스)

2014년은 <뉴스타파>의 저변을 넓힌 해이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독립 PD들과 꾸준히 협업해 왔고, 지난해 7월 세월호 참사 100일 특집 다큐 <세월호 골든타입, 국가는 없었다>를 공동제작, 공개했다. 10월에는 후원회원과 각계 전문가, 제작진들이 참여하는 <뉴스타파 포럼>을 마련했으며, 12월에는 포털 사이트 구글의 뉴스스탠드에 이름을 올려 접근성을 높였다. 또한 탐사저널리즘에 관심 있는 대학(원)생을 위한 연수생을 여름, 겨울에 각각 모집해 탐사저널리즘 교육을 시작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