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의 신화 깨고 진실 그린 ‘애니 다큐’

[한겨레신문] 2014년 1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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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가 선보인 다큐 ‘자백 이야기’(2013년 9월20일)

김 기자의 미(디어) 수다

오빠를 간첩으로 지목한 여동생. 간첩은 맞지만 ‘필요한 순간에 기억을 없앨 수 있다’는 약물을 이용해 거짓말탐지기를 무사 통과했다는 탈북 여성. 하지만 두 사람은 모두 국가정보원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놓여나자마자, 자신의 ‘자백’을 뒤집었습니다. 국정원과 두 사람의 주장은 엇갈립니다.

여러 언론이 이런 ‘반전’의 막전막후를 다뤘습니다. 그런데 인터넷 탐사보도 매체인 <뉴스타파>는 ‘자백 이야기’(2013년 9월20일·왼쪽 사진), ‘국정원 거짓말 탐지기를 속인 여자’(2014년 7월3일·오른쪽)란 제목의 조금 ‘특별한’ 다큐 2편을 선보였습니다. 50여분짜리 프로그램의 30~50%를 애니메이션이나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채운 겁니다.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를 결합한 ‘애니 다큐’는, 1982년 팔레스타인 난민촌의 학살을 다룬 <바시르와 왈츠를>(아리 폴만·2008) 같은 영화로 알려져 있는데, <뉴스타파>가 이 방식을 시사 다큐에 전격 도입한 것입니다.

<뉴스타파>가 선보인 다큐 ‘국정원 거짓말 탐지기를 속인 여자’(2014년 7월3일)

시나리오·연출을 맡은 최승호 앵커는 “사건을 더 쉽게 전달해야겠다는 의도가 있었고, 합신센터나 법정에서 일어난 일을 재현하기가 쉽지 않아서” 애니를 택했답니다. 애니 활용이 스튜디오·배우가 필요한 재연보다 제작비도 덜 들어간다고 해요.

최승호 앵커의 첫 구상은, 법정에서 녹음된 음성 파일을 애니에 고스란히 입히는 방식이었답니다. 하지만 주의할 점이 많아서 접고, 대신 증언·기록에 바탕한 대사를 성우들이 읽도록 했습니다. 시행착오도 있었어요. 첫 녹음 때 국정원 직원을 맡은 성우의 목소리에 ‘악함’이 묻어나서, ‘드라이하게’ 재녹음했습니다. 애니메이션이 자칫 인물을 희화화한다고 여겨질 수 있기에, 각자의 주장을 제대로 전할 수 있도록 신경쓴 거죠.

애니에 등장하는 캐릭터와 실제 인물의 싱크로율은, 인물의 신원 노출이 가능한지에 따라 다릅니다. 인물별로 ‘닮게도, 안 닮게도’ 그린 거죠. 인물을 범죄자 취급하는 듯한 모자이크 대신, 캐릭터라 해도 눈, 코, 입이 있는 얼굴로 접하니 ‘사람 냄새’가 납니다. 신원 보호도 하고 이야기 몰입도를 높이는 효과가 생깁니다.

애니 작업은 외주업체인 ‘유레루애니메이션’ 소속 감독과 애니메이터, 사운드 디자이너 등 6명이 참여했습니다. 제이(별칭) 감독은 “권력 비판과 사회 고발의 의미에다가 미디어아트적 속성이 결합하니 (다큐) 장르가 풍부해지는 것 같았다”고 하네요. 애니메이션 비중이 높은 1탄에 견줘, 2탄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이 많아진 이유는 제작 기간을 한달에서 열흘 아래로 줄이기 위한 방편이었대요.

<문화방송>(MBC)에서 <피디수첩> 등을 연출하다 해고된 최승호 앵커는 “지금 공영방송에선 국정원 비판이란 소재 자체를 다루기 어렵고, 애니 도입은 상상조차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실제 <한국방송>(KBS)의 <추적 60분>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의 전말’ 편(2013년 9월7일 방송)을 내보내며 방송 분량의 절반을 국정원 주장에 할애했음에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법정 제재(경고)를 받았습니다. <피디수첩>, <그것이 알고 싶다>(SBS)에서는 이런 사건들을 다루지 않았습니다.

‘만화 저널리즘’ 분야를 일군 미국 언론인 조 사코가 떠오릅니다. 그는 2011년 출간한 책에서 “본질적으로 해석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매체인 만화가 가지는 축복이라면, 내가 나 자신을 기존 언론의 틀에 가두지 않아도 되게끔 해주었다는 것”이라면서, 저널리즘은 ‘기계적 균형’이나 ‘객관성’의 신화를 맹신하는 대신 약자의 편에서 진실을 파헤쳐야 한다고 했습니다. 시사 다큐에 애니 좀 쓰면 어떻습니까. 저널리즘의 본분만 지킨다면 말입니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